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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통과 가능성 9.3점”…로펌 대관팀은 데이터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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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alCrew
관리자
2026-08-03 10:14 ·조회수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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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한겨레원문 보기 →
인공지능(AI)이 소장을 쓴다는 이야기는 이제 놀랍지 않다. 물결은 이미 법정 바깥으로 번지고 있다. 의원실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로펌의 대관팀 업무가, 기업 법무팀의 하루가, 심지어 변호사 사무실의 운영 시스템 자체가 바뀌는 중이다.

법무법인 화우 대관팀에는 모토가 있다. 1번,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2번,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일한다.’ 이 두 문장 앞에는 오랜 고생담이 생략돼 있다.

대관팀이란 기업이 원하는 입법이나 인허가가 이뤄지도록 국회·정부를 상대로 소통하는 로펌의 조직을 말한다. 이들은 기업이 원하는 법률안을 발의해줄 국회의원실을 찾아 밤낮없이 뛰어다녀야 했다. 앞에서는 “해줘야지” 하던 의원실이 뒤돌아서서는 “요새 바빠서”라며 발을 빼고, 보좌관들은 묻지도 않고 “관심 없다”며 법안을 던져버렸다. 타임라인이 어그러지면 처음부터 도돌이표였다.


홍정석 변호사(법무법인 화우)는 그 시절을 이렇게 요약했다. “일을 맡는 순간부터 숨이 막혔어요. 재판은 기일이 있고 선고가 나면 끝나는데, 대관은 기일도, 판결문도 없으니 내가 일을 했다고 증명할 수도 없으니까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대관의 재발명

지금 그는 의원실 말만 믿고 일하지 않는다. 대신 에이아이를 먼저 돌린다. 기획재정위원회 소관 법안이라면 기재위 의원 전원의 발의 법안과 공동발의 이력, 소위원회·전체회의 발언, 보도자료에 담긴 정치 성향, 경력을 모두 입력한다. 그러면 그 법안에 대한 우호·부정·중립이 갈리고, 발의 때 이름만 올리는 의원과 끝까지 밀어붙일 의원이 구분된다. 법안 완주 가능성은 ‘9.3점’ 하는 식의 점수로 매겨진다.


“의원님이 관심 많으실 것 같아 찾아왔습니다.” 이 데이터를 내밀며 제안하면 화법부터 달라졌다. 관심 없던 의원도 있는 척이라도 하게 되고, 말을 바꿀 확률도 줄었다.

기업 실무진도 만족했다. 예전에는 “보좌관이 그러더라”는 전언에 반응이 시큰둥했지만, 지금은 데이터 분석 보고서를 그대로 윗선에 보고한다. 특히 외국계 기업들에 이 방식이 통했다.


홍 변호사는 에이아이가 대관의 체질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본다. “에이아이로 분석한 자료를 의원실에 전달하는 게 왜 청탁입니까. 데이터에 기반해 공식적으로 의견을 내는 거죠. 그러면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수사받을 일도 없어요. 다 드러나니까요.”


미국선 이미 산업된 입법 데이터

기록을 안 남기던 음지의 대관을 양지로 끌어내는 것, 미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방식이다. 국회의원 출신으로 법률·정책 빅데이터 플랫폼 ‘피스컬노트’에서 아시아·태평양 어드바이저를 지낸 송호창 변호사(미국 정치컨설턴트)의 설명이다. 뉴욕 증시에 상장한 피스컬노트는 80개국의 정책 데이터를 서비스한다. 방식은 이렇다.

미국 의회는 예산소위·법안소위 회의록까지 공개하는데, 하루 수천 건이라 사람이 다 읽을 수 없다. 피스컬노트는 이 공개 데이터를 에이아이 봇이 실시간으로 긁어 분석하고 발언자까지 식별해 공식 속기사보다 먼저 회의록을 만들어 판다. 여기에 1940년대부터 기자 300여명을 의회에 상주시켜온 언론사 시큐(CQ)를 인수해 비공개 정보까지 검증한다. 로봇이 전량을 수집하고 기자가 빈틈을 메우는 구조에, 인맥으로 일하던 워싱턴 로펌들이 거꾸로 이 서비스를 구독한다.

“워싱턴 로펌들은 인적 네트워크로 일하다 보니 의회에서 얻는 정보가 인맥 범위로 한정됩니다. 그런데 (피스컬노트처럼) 크롤링 프로그램과 에이아이 기술을 접목하면, 로펌이 하는 것과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는 거죠.”(송호창 변호사)


“에이아이 쓰시죠? 수임료 깎아주세요”

기업 법무팀도 변화의 물결 위에 있다. 에스케이(SK)온 법무팀 이윤석 변호사의 일상이 그 풍경을 보여준다. 에이아이가 ‘루틴의 일부’가 되면서 그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계약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전체 프레임이 잡혔는데, 지금은 에이아이에 계약서를 넣고 어떤 계약이고 어떤 조건이며 누구에게 유리한지 큰 틀을 먼저 본다. 처음 보는 법령 앞에서 어디부터 봐야 할지 막막할 때, 이 법이 무엇을 규율하고 어디를 조심해야 하는지 짚어주는 것도 에이아이다.

그럴수록 이 변호사가 강조하는 것은 ‘최초의 비판자’라는 역할이다. 에이아이는 사용자가 원하는 답 쪽으로 기울어 답하는 ‘아첨’ 현상을 보이기 쉬운데, 그 답이 검증 없이 기업의 최종 의사결정 근거로 올라가면 손해는 회사가 본다. 때문에 에이아이가 내놓은 답이 맞는지 틀리는지 판별하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확정하는 일, 그것이 기업 법무팀의 본질적 역할이 됐다.


“AI 쓰죠?” 수임료 인하 요구까지

이윤석 변호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에이아이 도입은 기업 법무팀 전반에서 로펌을 향한 셈법도 바꿔놓았다. 예전에는 간단한 질의도 건건이 로펌에 물어보고 시간당 수임료를 내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지금은 “이 정도는 에이아이로 되겠다” 싶은 건 자체 해결하고 정말 판단이 필요한 사안만 로펌에 넘긴다. 로펌에 도착하는 질문의 난이도는 올라가고 건수는 줄어드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기업 법무팀이 로펌에 묻는 말도 바뀌었다. “그쪽도 에이아이 쓰시죠? 그럼 얼마나 수임료를 깎아주실 수 있나요?”

윤세환 변호사(윤정 법률사무소)의 에이아이 활용은 사무실 운영 시스템 구축으로까지 나아갔다. 사건 관리와 의뢰인용 포털 개발 견적이 8천만원 나오자, 개발 경험이 전무한데도 직접 나섰다. 지난 2월 코딩 능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클로드’를 활용해 몇 달 만에 시스템을 구축했다.

법원에 문서가 제출되면 문자 알림이 오고, 기일과 마감을 놓치지 않게 ‘리마인드 알람’이 뜬다. 언제 어떤 작업을 했는지가 송무일지처럼 쌓여 보수 청구 근거이자 인수인계 자산이 된다. 모든 자료가 클라우드로 올라가 휴대전화로도 확인된다. “의뢰인이 문의하면 예전엔 ‘사무실 들어가서 확인할게요’ 했는데, 지금은 이동하면서 바로 답합니다.”

8천만원 견적서 대신 ‘셀프 코딩’

서면도 구글 코랩과 클로드 코드를 활용한다. 사건기록 폴더를 지정하면 에이아이가 알아서 서증을 찾아 ‘갑 제1호증’으로 인용하고 제출 형식까지 만든다. 백미는 검증 루프다. “9.5점을 넘을 때까지 스스로 고쳐라”고 지시하면 에이아이가 스무 번 넘게 초안을 고친다. 그가 몸으로 하던 7~8단계 퇴고를 통째로 언어화해 넣은 것이다. 요즘은 대학 시절 읽은 글쓰기 고전을 다시 펼쳐 감으로만 읽혔던 원칙들을 프롬프트로 옮긴다. “글을 이제 과학 실험처럼 씁니다. 공식을 만들어서 문서를 완성하는 거죠.”

소장은 시작이었을 뿐이다. 의원실을 돌던 발품은 데이터 보고서가 됐고, 몸에 밴 퇴고의 감각은 프롬프트가 됐으며, 8천만원짜리 외주는 셀프 코딩이 됐다. 대관도, 법무팀의 하루도, 변호사 사무실 운영도 어느 것 하나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일을 잘한다는 것의 정의가 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