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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걸릴 기록 검토, AI는 1시간…“저연차 변호사 20명 쓴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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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alCrew
관리자
2026-07-20 10:09 ·조회수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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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한겨레원문 보기 →
미래&디지털: AI가 바꾼 법정
①검증의 시대 - 변호사 편


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곳이 법조계다. 소송의 모든 것은 텍스트다. 소장과 서면, 판결문으로 쌓인 기록은 언어를 다루는 생성형 에이아이에 가장 빠르게 반응했다. 고소득 선망 직종이라는 점에서 법조의 변화는 화이트칼라 전체의 예고편이기도 하다. 한겨레는 3개월 동안 판사, 변호사, 법학자, 로스쿨 학생 등 20여명을 만나 에이아이가 바꾼 법정과 일, 다음 세대의 고민을 들었다.

조영곤 변호사(법무법인 대륜·전 서울중앙지검장)는 검사 시절 대형 사건을 맡으면 가장 먼저 기록과 싸웠다. 몇 년치 회계자료와 이메일이 뒤엉킨 기업 사건의 기록을 “전심전력으로 일주일”을 들여 읽고서야 수사 전략을 짤 수 있었다. 지금 그의 로펌은 다르다. “우리 에이아이(AI)를 동원하면 1시간도 안 걸린다. 10만장짜리 회계 자료도 몇 분이면 끝난다. 저연차 변호사 스무 명을 동시에 가동하는 효과다.”

그렇게 아낀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조영곤 변호사는 뜻밖의 답을 내놨다. “변호사가 사건 내용을 빨리, 정확하게 파악하니 의뢰인에게 정서적으로 접근할 여유가 생긴다. 예전에는 의뢰인이 ‘내 사건을 왜 저것밖에 모르지’ 하고 의심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불신의 시간이 사라지면서 관계가 훨씬 좋아졌다.”


“작년까지의 상식이 깨졌다”

변화는 소리 없이 왔다. 30년차 조광희 변호사(법무법인 원)는 어느 날부터 후배들의 서면이 달라 보였다. “초안의 퀄리티와 양, 정합성이 확 올라갔다. ‘요즘 친구들이 훌륭해졌나’ 했는데, 에이아이였다.”

2022년 말 챗지피티가 등장한 뒤에도 법조계는 “환각(할루시네이션)이 많아 못 쓴다”는 회의론이 지배했다. 그 공기가 뒤집힌 것은 최근이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 강민구 변호사(법무법인 도울)는 “지난 3년의 진보를 다 합쳐도 최근 몇 달의 변화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68살인 그는 법조계에서 손꼽히는 얼리어답터다. 책상 위에서는 제미나이, 클로드, 그록, 퍼플렉시티에 법률 특화 서비스인 슈퍼로이어와 엘박스까지 돌아간다. 구독료만 월 80만원. “써보니 딴 세상에 와 있다.” 쓰는 방식도 남다르다. 지시문(프롬프트) 설계부터 에이아이에 맡긴 뒤, 그 지시문을 여러 에이아이에 동시에 넣고 결과물 4개를 다시 통합시킨다. “인간이 말로 한 프롬프트와 에이아이가 설계한 프롬프트는 결과물이 하늘과 땅 차이다.”

반대쪽 끝에는 에이아이와 함께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세대가 있다. 30대인 고지철 변호사(법률사무소 로백스)는 2023년 변호사시험을 두 달 앞두고 챗지피티를 처음 만났다. 선배 없는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한 그에게 에이아이는 도제 교육의 대체재이자 유일한 동료였다.

그는 자신이 쓴 서면 30~40건의 형식과 문체를 에이아이에 학습시켰고, 초안을 고칠 때마다 수정본을 다시 넣는다. 그러면 에이아이가 답한다. ‘이렇게 수정하셨군요. 앞으로 반영하겠습니다.’ 문체를 길들이는 반복 작업이다. 그에게 에이아이는 ‘딸깍’ 버튼이 아니라 토론 상대다. “‘이 부분을 강조하고 싶은데 쓸 만한 판례가 있냐’고 동료를 대하듯 묻는다. 속도가 빨라졌다기보다 질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쓰는 시간은 줄었지만, 읽고 생각하는 시간은 늘었다.”

새 직업윤리가 된 ‘검증’

에이아이가 쓴 것을 사람이 책임지는 구조에서, 검증은 변호사의 의무가 됐다. 고지철 변호사는 회계 감정이 얽힌 사건의 경험을 들었다. 프로그램에 데이터를 넣으면 평가 자료가 바로 나오지만, 일이 끝난 게 아니었다. “결과가 맞는지,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여러 평가 방법 중 어떤 수치가 이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반영하는지는 전부 내가 판단해야 했다. 데이터를 넣는 작업은 줄었지만 판단하는 작업은 전혀 줄지 않았다.”

베테랑들은 저마다의 검증 기술을 갖고 있다. 강민구 변호사는 이를 ‘해자’에 비유했다. 성 둘레에 물길을 파 적군을 막듯, 에이아이가 지어내지 못하게 울타리를 쳐야 한다는 것이다. “환각은 상당 부분 질문자의 잘못이다. 판례를 물을 때는 국내 판례 데이터를 갖춘 법률 특화 서비스로 확인하는 해자를 쳐야 한다.”

그 검증하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조영곤 변호사의 답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아날로그적이다. “에이아이를 검증할 수 있는 자신의 읽는 힘, 분석하는 힘,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고지철 변호사도 같은 결론이다. “의심하는 능력은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해본 경험에서만 나온다.”

그렇다면 에이아이를 쓰는 변호사가 실제로 더 이기는가. 법률 에이아이 플랫폼 엘박스가 카이스트 오원석 교수 연구팀과 진행한 연구를 보면, 에이아이를 적극 활용하는 변호사일수록 승소율이 유의미하게 높았고, 서면 작성 기능은 활용도가 올라갈수록 승소율이 계단식으로 상승했다. 다만 정점이 있었다. 활용 비중 20~35% 구간에서 승소율이 가장 높았고, 그 이상 맡기면 곡선은 꺾였다. 이기는 쪽은 에이아이에 다 맡긴 변호사가 아니라, 에이아이와 자기 판단을 섞을 줄 아는 변호사였다.


반전은 하나 더 있다. 에이아이는 흔히 젊은 세대의 무기로 여겨지지만, 같은 연구에서 ‘업무 시간이 45분 이상 절감됐다’고 답한 비율은 고연차 변호사 그룹에서 40%로 가장 높았다. 법리와 맥락을 아는 사람일수록 지렛대가 큰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조광희 변호사의 증언도 일치한다. “안 해본 분야도 에이아이와 몇 번 문답하면 머릿속에 구조가 그려진다. 경험과 연차가 있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유용한 도구다.” 30년 전 도서관에서 판례를 손으로 찾던 세대가, 이제 전 분야를 여는 만능열쇠를 쥔 셈이다.


고참의 축복, 막내의 재앙

강민구 변호사의 전망은 직설적이다. “화면을 보고 말만 하면 문서는 에이아이가 만들어준다. 24시간 일하는 나의 분신이 생긴 셈이다. 경지에 오른 파트너급 변호사들에게는 축복이다. 문제는 나머지 90%다. 그들에게는 재앙에 가깝다.”

조짐은 미국에서 숫자로 나타나고 있다. 법률시장 분석업체 ‘펌프로스펙츠’ 조사를 보면, 2025년 미국 로펌의 주니어 변호사 채용은 전년보다 5% 줄었고, 전체 채용 인원 가운데 로스쿨 졸업반 출신은 38%에 그쳤다. 이 업체는 에이아이의 부상이 신입 인력 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에이아이는 막내가 짚고 올라갈 사다리를 흔든다. 판례 검색과 초안 작성은 신입 변호사의 밥벌이인 동시에 훈련 과정이었다. 조광희 변호사는 이렇게 회고했다. “예전에는 선배가 빨간 펜이나 워드 기능으로 수정하면, 후배가 그 과정에서 글과 논리를 배웠다. 지금은 처음부터 매끄러운 초안이 오니까, 배움의 과정이 생략된다.”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걱정도 같은 곳에 닿아 있다. “로펌은 투자 수익이 보이지 않으면 투자하지 않는다. 그럼 누가 다음 변호사들의 역량을 키울 기회를 만들어줄 것인가.”

막내가 사라진 로펌은 10년 뒤 파트너 변호사를 어디서 구할 것인가. 누구도 이 질문의 답을 갖고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