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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로펌서 전업 공익 변호사로…"난민은 현대 사회의 자화상"
LegalCrew
관리자
2026-07-20 10:02 ·조회수 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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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미디어 속 혹은 우리 머릿속 이들은 세금이라는 사회의 '입장권'을 구매하지 않은 불청객이자 수용 찬반 논란의 대상이다.
우리는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난민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 테두리를 잠시 지우고, 난민의 존재에서 인간의 근원적 취약성을 읽어내자고 말하는 이가 있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종찬 변호사(44·사법연수원 39기)다. 이 변호사는 정치적 격변과 기후 위기 등으로 강제 이주를 택할 수밖에 없는 난민이야말로 '현대인의 잠재적 자화상'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어필 사무실에서 이 변호사를 만나 난민 문제의 본질과 국내 난민 정책을 물었다.
전직 M&A 변호사, '3전 4기' 난민 소송 승소 이끌다
이 변호사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소송 등 '굵직한' 사건을 대리해 승소를 이끌어냈다. 현재는 대한변호사협회 국제인권특별위원회 위원, 난민인권네트워크 출입국항 실무그룹장 등도 겸임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는 2023년 나이지리아 국적 난민 소송을 꼽았다. 당시 의뢰인은 나이지리아 소수민족이자 기독교인으로, 분리독립 단체(IPOB)에서 10년 넘게 활동해 본국 송환 시 박해 위험이 컸다.
그는 법률 조력 없이 세 차례 심사를 거치며 모두 불인정 처분을 받았으나, 어필의 조력을 받은 행정소송에서 승소, 네 번째 도전 만에 가까스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 변호사는 "이 승소가 선례가 되어 해당 단체의 또 다른 초기 설립 멤버도 연이어 난민 인정을 받았다"며 "의뢰인이 '어필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번에도 당연히 안 됐을 것'이라 말했을 때 현장의 좁은 문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법무법인 태평양 기업 인수합병(M&A) 파트와 SK텔레콤 사내변호사를 거쳐 지난 2022년 어필에 전업 공익 변호사로 합류했다. 이 같은 변화를 그는 거창한 신념 대신 '현실적 여건'으로 설명했다.
그는 "생활인으로서 생업을 이어가며 틈틈이 공익 활동을 했지만, 사실 '병행'이라 부르기엔 부끄러운 수준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초기에는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가치도 생각했지만 내 역량을 뛰어넘는 일 같았다"며 "마침 여건이 맞아떨어져 난민 소송 등 꼭 필요한 업무에 전념할 수 있는 지금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난민은 세금 안 내는 불청객 아냐…이분법적 사고 넘어서야"
난민은 한국 사회에 '구성원의 자격'을 되묻게 한다. 통상 사회는 새로운 구성원에게 납세나 사회적 기여 등 현실적 효용을 묻는다. 한정된 자원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잣대다.
이 변호사는 난민 역시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며, 수용 여부라는 이분법을 넘어 '난민'이라는 지위가 담고 있는 현대 사회의 근원적 취약성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난민들은 합법적 체류 자격을 얻고 자신들이 차지하는 자리만큼 비용을 지불하며 살아간다"며 "결코 '세금을 안 내는 불청객'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변호사는 "난민 협약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고향을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는 현실에 대응하고자 체결됐다"며 "난민은 전쟁이나 정치적 격변, 기후 위기라는 상황을 국제사회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한국인이 강제 이주해야 할 상황이 생겼을 때 우리 역시 상호보완적인 국제사회의 보호 체계에 기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죽다 살아나야만 난민인가"… 가혹한 입증 책임·조력 부재 한계
이 변호사는 한국인이 가진 '디아스포라 '의 서사와 난민의 존재가 맞닿아 있다고 본다.
그는 "우리는 과거 미국과 중앙아시아 등으로 떠나야 했던 우리네 역사에 깊이 공감한다"며 "그렇기에 (과거 우리와 같은) 취약한 이주민을 실제로 마주하면 마음을 쏟고 돕고자 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고 했다.
지난 2022년 3월, 노옥희 당시 울산교육감이 반대 여론 속에서도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손을 잡고 등굣길을 함께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당시 울산 지역 학부모들은 이슬람 문화와 안전 문제 등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에 거세게 반발했다. 일부는 등교 거부를 하거나 시위까지 불사했다.
그러나 교육청과 학교가 설득을 지속하고, 아이들이 한데 어울리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학부모들도 불안감을 거두고 '같은 학부모'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시민의식 수준과 달리 현장의 벽은 높다. 이 변호사는 현재 난민 소송 현장의 가장 큰 장벽으로 '법률 조력의 부재'를 꼽았다. 2013년 이후 난민 인정 소송에서 변호사 없이 승소한 사례는 단 한 건에 불과하다.
이 변호사는 난민들에게 '공정한 심사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 변호사는 "난민 신청자들이 소송 단계에서라도 기본적인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국선변호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사 과정에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박해 경험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관행도 문제로 꼽았다.
이 변호사는 "과거의 경험이 박해 가능성을 입증하는 증거이긴 하지만, 반드시 선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죽다 살아난 사람, 직접 경험하고 탈출한 사람뿐만 아니라 위험에 처할까 봐 탈출한 사람 역시 난민"이라고 했다.
이러한 입증 책임은 2021년 '미라클 작전'으로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가족에게도 적용됐다.
당시 대사관 직원 등과 이들의 배우자, 미성년 자녀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왔지만 성년 자녀 일부는 뒤늦게 입국하거나 별도의 심사를 거쳐야 했다.
이 변호사는 "성년 자녀들은 1~2년 뒤에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난민 불인정 결정이 나왔다"며 "당시 한국은 그들에게 '탈레반이 네가 특별 기여자라는 걸 알고 박해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등의 논리를 들이댔다"고 했다.
그는 난민들의 권리 인정을 위해 치열하게 뛰면서도, 스스로의 전업 공익 활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 변호사는 "오히려 본업에 치열하게 임하면서도 돈이 되지 않는 공익 활동을 묵묵히 병행하는 동료 변호사들이 훨씬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며 말을 맺었다.
우리는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 난민을 바라본다. 하지만 이 테두리를 잠시 지우고, 난민의 존재에서 인간의 근원적 취약성을 읽어내자고 말하는 이가 있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이종찬 변호사(44·사법연수원 39기)다. 이 변호사는 정치적 격변과 기후 위기 등으로 강제 이주를 택할 수밖에 없는 난민이야말로 '현대인의 잠재적 자화상'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어필 사무실에서 이 변호사를 만나 난민 문제의 본질과 국내 난민 정책을 물었다.
전직 M&A 변호사, '3전 4기' 난민 소송 승소 이끌다
이 변호사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소송 등 '굵직한' 사건을 대리해 승소를 이끌어냈다. 현재는 대한변호사협회 국제인권특별위원회 위원, 난민인권네트워크 출입국항 실무그룹장 등도 겸임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는 2023년 나이지리아 국적 난민 소송을 꼽았다. 당시 의뢰인은 나이지리아 소수민족이자 기독교인으로, 분리독립 단체(IPOB)에서 10년 넘게 활동해 본국 송환 시 박해 위험이 컸다.
그는 법률 조력 없이 세 차례 심사를 거치며 모두 불인정 처분을 받았으나, 어필의 조력을 받은 행정소송에서 승소, 네 번째 도전 만에 가까스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이 변호사는 "이 승소가 선례가 되어 해당 단체의 또 다른 초기 설립 멤버도 연이어 난민 인정을 받았다"며 "의뢰인이 '어필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번에도 당연히 안 됐을 것'이라 말했을 때 현장의 좁은 문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법무법인 태평양 기업 인수합병(M&A) 파트와 SK텔레콤 사내변호사를 거쳐 지난 2022년 어필에 전업 공익 변호사로 합류했다. 이 같은 변화를 그는 거창한 신념 대신 '현실적 여건'으로 설명했다.
그는 "생활인으로서 생업을 이어가며 틈틈이 공익 활동을 했지만, 사실 '병행'이라 부르기엔 부끄러운 수준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초기에는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가치도 생각했지만 내 역량을 뛰어넘는 일 같았다"며 "마침 여건이 맞아떨어져 난민 소송 등 꼭 필요한 업무에 전념할 수 있는 지금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난민은 세금 안 내는 불청객 아냐…이분법적 사고 넘어서야"
난민은 한국 사회에 '구성원의 자격'을 되묻게 한다. 통상 사회는 새로운 구성원에게 납세나 사회적 기여 등 현실적 효용을 묻는다. 한정된 자원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잣대다.
이 변호사는 난민 역시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며, 수용 여부라는 이분법을 넘어 '난민'이라는 지위가 담고 있는 현대 사회의 근원적 취약성을 직시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난민들은 합법적 체류 자격을 얻고 자신들이 차지하는 자리만큼 비용을 지불하며 살아간다"며 "결코 '세금을 안 내는 불청객'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 변호사는 "난민 협약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고향을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는 현실에 대응하고자 체결됐다"며 "난민은 전쟁이나 정치적 격변, 기후 위기라는 상황을 국제사회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한국인이 강제 이주해야 할 상황이 생겼을 때 우리 역시 상호보완적인 국제사회의 보호 체계에 기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죽다 살아나야만 난민인가"… 가혹한 입증 책임·조력 부재 한계
이 변호사는 한국인이 가진 '디아스포라 '의 서사와 난민의 존재가 맞닿아 있다고 본다.
그는 "우리는 과거 미국과 중앙아시아 등으로 떠나야 했던 우리네 역사에 깊이 공감한다"며 "그렇기에 (과거 우리와 같은) 취약한 이주민을 실제로 마주하면 마음을 쏟고 돕고자 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고 했다.
지난 2022년 3월, 노옥희 당시 울산교육감이 반대 여론 속에서도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손을 잡고 등굣길을 함께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당시 울산 지역 학부모들은 이슬람 문화와 안전 문제 등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에 거세게 반발했다. 일부는 등교 거부를 하거나 시위까지 불사했다.
그러나 교육청과 학교가 설득을 지속하고, 아이들이 한데 어울리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학부모들도 불안감을 거두고 '같은 학부모'의 시선으로 아이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시민의식 수준과 달리 현장의 벽은 높다. 이 변호사는 현재 난민 소송 현장의 가장 큰 장벽으로 '법률 조력의 부재'를 꼽았다. 2013년 이후 난민 인정 소송에서 변호사 없이 승소한 사례는 단 한 건에 불과하다.
이 변호사는 난민들에게 '공정한 심사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 변호사는 "난민 신청자들이 소송 단계에서라도 기본적인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국선변호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심사 과정에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박해 경험을 지나치게 요구하는 관행도 문제로 꼽았다.
이 변호사는 "과거의 경험이 박해 가능성을 입증하는 증거이긴 하지만, 반드시 선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죽다 살아난 사람, 직접 경험하고 탈출한 사람뿐만 아니라 위험에 처할까 봐 탈출한 사람 역시 난민"이라고 했다.
이러한 입증 책임은 2021년 '미라클 작전'으로 입국한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가족에게도 적용됐다.
당시 대사관 직원 등과 이들의 배우자, 미성년 자녀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왔지만 성년 자녀 일부는 뒤늦게 입국하거나 별도의 심사를 거쳐야 했다.
이 변호사는 "성년 자녀들은 1~2년 뒤에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난민 불인정 결정이 나왔다"며 "당시 한국은 그들에게 '탈레반이 네가 특별 기여자라는 걸 알고 박해한 것이 아니지 않느냐' 등의 논리를 들이댔다"고 했다.
그는 난민들의 권리 인정을 위해 치열하게 뛰면서도, 스스로의 전업 공익 활동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 변호사는 "오히려 본업에 치열하게 임하면서도 돈이 되지 않는 공익 활동을 묵묵히 병행하는 동료 변호사들이 훨씬 대단하고 존경스럽다"며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