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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재판 지연, 법원이 따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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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6-06-18 10:09 ·조회수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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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조선일보원문 보기 →
헌법재판소가 헌법소원 사건을 4년째 결론 내지 않는 것이 헌법에 위배됐는지를 법원이 따져보겠다며 헌재에 해명을 요구했다. 법원이 헌재의 재판 지연을 문제 삼아 기본권 침해 여부를 심리하는 건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0부는 지난 12일 헌재에 ‘헌법재판 지연 사유에 관한 의견 요청서’를 보냈다고 17일 밝혔다. 재판부는 “헌재의 부작위 처분(재판 지연)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여부의 심사를 개시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언론에 배포한 설명 자료에서 “법원이 헌재의 기본권 침해를 최초로 들여다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통일TV 대표 진천규씨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 항소심을 맡고 있다. 진씨는 2018년 북한에서 구입한 서적과 노동신문 등을 통일부 승인 없이 국내에 반입한 혐의로 기소돼 2022년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러자 진씨는 북한에서 물품을 반입할 때 통일부 승인을 받도록 규정한 법이 위헌이라며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그런데 헌재는 4년이 지난 현재까지 결론 내지 않았고, 항소심 재판은 그 결과를 기다리느라 멈춘 상태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모든 국가 권력이 헌법의 구속을 받듯 헌재도 헌법의 구속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도입된 재판소원 제도로 헌재가 법원의 판결을 취소할 수 있게 되자 “법원도 헌재를 심사할 수 있다”며 반격에 나선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법원 “모든 권력이 헌법에 구속 받듯, 헌재도 똑같이 적용돼야”

서울중앙지법이 헌법재판소의 재판 지연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는지 심사하겠다고 나서면서, 법원과 헌재의 갈등이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법원과 헌재는 ‘최고 사법기관’ 지위를 놓고 과거에도 여러 차례 충돌했다. 하지만 법원이 헌재의 재판을 문제 삼아 위헌 여부를 심사한 적은 없었다.

중앙지법 형사항소50부는 헌재에 ‘헌법소원 재판 지연 사유와 주심 재판관과 보고연구관 사이의 보고 등 심리 경과를 담은 의견서를 30일 내에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헌법 107조 2항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 조항은 ‘명령·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법률에 위반되는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 대법원이 최종 심사권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제기한 헌법소원을 헌재가 지연시키는 것도 법원이 심사할 수 있는 ‘처분’에 포함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헌재가 사건을 오래 끄는 동안 당사자의 참여권도 침해됐다고 지적했다. 당사자에게 의견을 듣거나 쟁점 검토 상황을 알리지 않은 채 수년째 미뤄온 것은 헌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헌재는 이 사건 개시만 해놓고 약 4년 만인 지난 4월 통일부에 처음 사실조회를 했다.

이에 대해 헌재 관계자는 “법원이 위헌·위법성을 심사하려면 그 처분이 재판 결과를 좌우해야 하는데 이번 사건은 그렇지 않다”면서 “헌법소원이 제기됐다고 법원이 재판을 멈출 이유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헌재가 의견서를 내야 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헌법소원 사건이 4년 넘게 지연됐더라도 피고인의 유무죄가 갈리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한 현직 부장판사도 “피고인이 ‘헌재가 4년간 결정을 안 해줘 재판을 못 받고 힘들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면 ‘헌재의 늑장 재판이 잘못이냐’가 쟁점이 되겠지만 이번 재판은 북한 물품을 들여온 게 죄가 되는지를 가리는 것이어서 헌재의 재판 지연과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가 헌재의 재판 지연이 기본권 침해라고 판단하더라도, 이 사건 재판 결과에 영향을 주거나 헌재를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한 부장판사는 “판결의 전제가 되는 남북교류협력법 조항의 위헌 여부는 헌재가 판단해야 한다”며 “재판부가 헌재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이라면 ‘헌재의 재판 지연이 기본권 침해’라는 판결만 따로 내릴 수도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한 고법판사는 “재판 지연을 심사하기 시작하면, 법원에서 지연되고 있는 재판들도 비슷한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고 했다. 한 현직 판사는 “이 사건 재판부도 결국엔 사건을 장기간 끈 것 아니냐는 반론에 직면할 수 있다”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재판소원 제도에 대한 법원의 ‘맞불’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법원이 헌재의 재판도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한 로스쿨 교수는 “일반 헌법소원 사건도 3~4년씩 결론을 못 내면서 재판소원은 어떻게 하느냐는 지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소원은 지난 3월 12일 제도 시행 후 이날까지 1000여 건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8건이 사전 심사를 통과해 헌재 전원재판부의 심리를 받고 있다. 헌재는 최근 법원의 법률 해석을 정면으로 문제 삼는 사건들을 여럿 심판에 회부했다. 피해자가 수차례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도 법원이 ‘강간죄가 성립할 정도의 폭행·협박은 없었다’며 유사강간 혐의를 무죄로 본 판결 등이 대표적이다.

헌재도 심사 대상이 돼야 한다는 재판부 판단에 공감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헌법학 교수는 “헌재는 갈등이 첨예한 사건이 접수되면 사회적 관심이 사그라들 때까지 3~4년 묵히다 각하하는 경우가 있다”며 “헌재도 신속한 재판을 받을 국민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