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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봉투법 후 첫 대법 선고…“구법 사건에 신법 법리 적용 안 돼” [허란의 판례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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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alCrew
관리자
2026-06-01 10:38 ·조회수 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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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magazine.hankyung.com원문 보기 →
2016년 4월 전국금속노동조합은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로 구성된 지회를 내세워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노동조합 활동 보장, 산업안전, 고용보장 등 8개 의제에 성실히 응하라는 내용이었다.

HD현대중공업은 “하청 근로자들과 근로계약을 맺은 당사자가 아니어서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거부했고 노조는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은 10년에 걸쳐 대법원 전원합의체까지 올라갔다.

이번 선고는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개정 노동조합법이 올해 3월 10일 시행에 들어간 이후 첫 전원합의체 판결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노란봉투법은 제2조 제2호에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는 조항을 추가했다.이 사건에는 경과규정이 없어 구 노동조합법이 적용되지만 대법원이 구법 사건에서도 신법의 취지를 반영해 종전 법리를 변경할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구법 사건에서 종전 법리를 변경해 신법과 유사한 법리를 창설·적용하려는 시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시하며 기존 법리를 그대로 유지했다.

다수의견
“구법 사건에서 신법 법리 창설은 부적절”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 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5월 21일 원고(전국금속노동조합)의 상고를 8대 4로 기각하고 원심(부산고등법원)을 확정했다(2018다296229).

원심은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가 소속 근로자들에 대해 독자적인 지휘·감독권을 행사했고 양측 근로자들이 혼재해 근무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를 부정했다.

대법원 다수의견도 이를 수긍했다. 다수의견의 출발점은 1986년부터 확립된 종전 법리다. 대법원은 그간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란 근로자와의 사이에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근로계약 관계를 맺고 있는 자”라고 판시해 왔다.

다수의견은 이 법리가 구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사안에서 여전히 타당하다고 봤다. 다수의견이 내세운 논거는 크게 네 가지다. 부당노동행위 유형별로 사용자의 범위를 달리 볼 수 있다는 점이 첫 번째다.대법원은 이미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서는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바 있다(대법원 2010. 3. 25. 선고 2007두8881 판결). 그러나 단체교섭은 단체협약 체결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사용자 범위가 근로계약 관계 존재 여부와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다수의견의 논리다.

지배·개입이라는 사실적 행위와 달리 단체협약을 체결하기 위한 적극적 의무까지 원청에 부담시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죄형법정주의도 핵심 근거다. 단체교섭 거부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라는 형사처벌이 가능한 부당노동행위다. 이처럼 형사처벌까지 연계된 구성요건에서 사용자 개념을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논거는 노란봉투법의 개정 경위다. 다수의견은 개정이유서에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사용자에 포함해 노동3권이 실효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한다’고 명시된 것에 주목했다. 이는 입법자 스스로 기존 대법원 판례에서는 그런 자가 사용자에 포함되지 않았음을 인정하면서 새로 바꾼 것이라는 논리다.

노란봉투법은 종전 법리를 전제로 사용자 개념을 확대한 입법적 결단이므로 법원이 구법 사건에서 먼저 법리를 바꿀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법의 본질론도 제시됐다.

다수의견은 “사법의 본질은 구체적 사건의 권리구제를 목적으로 하므로 구체적 사건과 무관한 추상적 법리를 선언할 수 없다”며 구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2016년 사안에 관해 개정 노동조합법과 실질적으로 유사한 내용의 법리를 창설하고 적용하려는 시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못 박았다.

반대의견
“종전 법리, 논리·헌법 정신 모두 상실”


이흥구·오경미·신숙희·마용주 대법관은 다수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반대의견의 핵심은 구 노동조합법하에서도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면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반대의견은 헌법 제33조가 보장하는 단체교섭권은 입법을 기다려 형성되는 권리가 아니라 헌법 규정만으로 직접 효력을 발휘하는 구체적 권리라는 점을 핵심 논거로 내세웠다. 노란봉투법의 성격에 대해서도 다수의견과 정면충돌했다.

반대의견은 노란봉투법이 “완전히 새로운 입법이 아니라 노동위원회와 하급심 법원이 구 노동조합법을 헌법 정신에 맞게 해석해 온 것을 반영해 명확히 규정한 것”이라고 봤다. 다수의견이 노란봉투법을 종전 법리의 부재를 전제로 한 새로운 입법으로 본 것과 정반대다.

1990년대 이후 간접고용이 급격히 확산한 현실에서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사실상 지배하면서도 근로계약이 없다는 이유로 교섭 의무를 면탈하는 구조는 헌법상 단체교섭권을 공동화한다고도 강조했다. “종전 법리는 논리적 정합성이나 헌법 정신에 맞는 구체적 타당성을 모두 상실했다”는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반대의견은 8개 교섭 의제를 개별 검토해 산업안전·재해보상(제2항), 하청업체 폐업 시 고용보장 및 근로조건 승계(제7항), 이와 관련된 조합활동·단체교섭·노동쟁의·단체협약 효력(제1·4·6·8항) 등 6개 의제에 대해서는 HD현대중공업이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한다고 봤다.

노사협의회 사항(제5항)은 의무를 인정하기 어렵고 고용보장(제3항)은 원고의 주장 내용을 명확히 심리한 후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돋보기]
“구법 논쟁 마지막 페이지”…노란봉투법 사건선 기준 달라진다


이번 판결은 구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사건에 국한되지만 파장은 상당하다. CJ대한통운·현대제철·한화오션과 백화점·면세점 업계 등이 구 노동조합법에 따른 소송을 진행 중인데 이들 사건에서 원청의 단체교섭의무는 이번 판결 논리에 따라 부정되는 방향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

HD현대중공업을 대리해 1심부터 대법원까지 전 심급 승소를 이끈 법무법인 태평양(노영보·김성수·문정일·김일연·김상민·김재현·이성진 변호사)은 “구 노동조합법상 원청의 단체교섭의무 논쟁에 관해 사실상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노란봉투법이 적용되는 사건에서는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다수의견도 “향후 개정 노동조합법이 적용되는 사건에서는 ‘실질적 지배·결정 지위에 있는 자’의 개념을 입법목적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주목할 것은 반대의견이 개정 노동조합법상 실질적 지배력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이다.

반대의견에 따르면 원청의 단체교섭의무는 ①원청이 해당 근로조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사실상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고 ②하청 근로자의 원청에 대한 경제적 종속성이 있으며 ③단체교섭의무를 부담시킬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 한정된다.

고용노동부의 개정 노동조합법 해석지침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향후 노란봉투법 적용 사건에서 실질적 지배력 판단의 가이드라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금속노조는 “하청 노동자 현실을 외면한 대법원을 규탄한다”며 “노동3권을 짓밟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HD현대중공업은 “판결을 존중하며 성실하게 교섭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