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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투자계약 ‘독소조항’ 논란…대표가 빚 떠안았다 [허란의 판례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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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alCrew
관리자
2026-05-18 11:04 ·조회수 1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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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magazine.hankyung.com원문 보기 →
스타트업이 벤처 투자를 유치하면서 대표이사가 ‘이해관계인’으로 투자계약에 서명했다가 회사 회생절차 개시만으로 거액의 투자금 반환 책임을 지게 된 사건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대표이사의 귀책 사유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투자계약서에 서명한 사실 하나만으로 약 12억5000만원의 개인 채무가 확정되면서 스타트업 투자계약의 독소 조항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대법원 제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지난 4월 30일 신한캐피탈이 하진우 어반베이스 대표를 상대로 낸 약정금 청구 소송에서 피고의 상고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했다. 이로써 하 대표가 신한캐피탈에 12억5205만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이 확정됐다.
2017년 5억 투자, 6년 뒤 회생 신청


2014년 설립된 어반베이스는 도면을 3차원(3D)으로 변환하는 기술을 앞세워 실내 공간 정보 및 가상·증강현실(VR·AR) 플랫폼을 개발한 프롭테크 스타트업이다.

삼성·한화·신세계 등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며 한때 기업가치가 4000억원대까지 평가됐다.
신한캐피탈은 2017년 11월 어반베이스가 발행한 상환전환우선주(RCPS) 1586주를 4억9984만원에 인수했다.

당시 어반베이스 대표이자 최대주주(지분율 41%)였던 하 대표는 ‘이해관계인’ 자격으로 투자계약서에 직접 서명했다.

계약서 제28조는 회사에 해산·청산·파산·회생 또는 이에 준하는 절차가 개시되는 경우 투자자가 어반베이스 또는 대표이사 개인을 선택해 주식매수를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매수 가격은 투자 원금에 거래완결일로부터 매매 이행일까지 연복리 15%를 가산한 금액으로 매수청구서 도달 시점에 매매계약이 성립하고 30일 내 대금 지급 의무가 발생하도록 했다.
또한 계약서 제29조는 당사자가 지급기일에 금원을 지급하지 않을 경우 지체된 금액에 대해 연복리 15%의 지연손해금을 가산하도록 했으며 피고가 자신의 책임 있는 사유로 계약상 의무를 위반한 경우 위약벌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2023년 12월 어반베이스는 서울회생법원에 간이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고 2024년 1월 회생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벤처투자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신규 투자가 막히고, 수년간 추진하던 코스닥 기술 특례상장도 지연되면서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결과였다. 신한캐피탈은 즉각 하 대표 개인을 상대로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1심 “문언이 명확하다, 귀책 사유 불문”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6민사부(재판장 김형철 판사)는 2025년 7월 16일 신한캐피탈의 청구를 대부분 인용했다(2024가합59259).

재판부는 우선 매매대금 산정 방식을 정리했다. 하 대표 측은 ‘매매 이행일’을 실제로 돈을 다 갚는 날까지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계약 제29조 제2항에 지급 지체 시 별도의 지연손해금 규정이 따로 있는 점, ‘실제 다 갚는 날’로 해석하면 매매대금을 미리 특정할 수 없는 점을 들어 ‘매매 이행일’은 매수청구서 도달 후 30일이 경과한 2024년 12월 7일이라고 못 박았다.

최종 인용액은 2017년 11월 30일부터 2023년 12월 31일까지의 복리 이자를 포함한 11억3528만원에 2024년 1월 1일부터 이행일까지 원금에 대한 연 25%로 계산한 1억1676만원을 더한 금액이다.

하 대표 측의 핵심 방어 논리는 세 갈래였다. 첫째, 투자 당시 신한캐피탈 담당자가 “자금을 유용하지 않는 한 투자금을 회수하러 가지 않겠다”고 했고 임원 텔레그램 단체방에도 관련 대화가 있었다며, 주식매수청구권 조항을 배제하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텔레그램 대화의 당사자가 특정되지 않고 해당 내용이 이 조항을 가리키는지도 불분명하다고 일축했다.

둘째, 귀책 사유 없는 대표에게 투자 위험을 전가하는 것은 민법 제103조·제104조에 반해 무효라는 주장도 배척됐다.

재판부는 “피고는 계약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고 스스로 판단에 따라 날인한 것으로 보이며 원고가 우월한 지위에서 부당한 조항을 강요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셋째, 위약벌·주주평등·자본충실 원칙 위반 주장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다른 계약엔 귀책 제한 문구 있었다”


서울고등법원 제16민사부(재판장 김인겸 판사)는 2025년 12월 18일 하 대표의 항소를 기각했다(2025나208984).

하 대표 측은 이 사건 주식매매대금 조항이 실질적으로 손해배상액의 예정과 유사하므로 감액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주식매수청구권은 채무불이행과 무관하게 계약에서 정한 사유 발생만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리여서 손해배상액 예정과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일축했다.

항소심에서 가장 주목할 대목은 하 대표가 또 다른 투자사 E와 체결한 계약서가 증거로 제출된 부분이다. 해당 계약서에는 “이해관계인인 피고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의해 발생한 경우에 한해 주식매수 의무를 부담한다”는 귀책 사유 제한 문구가 명시돼 있었다.

재판부는 이를 결정적 근거로 삼았다. “이러한 규정이 없는 이 사건 계약에서는 피고가 귀책 사유 유무와 관계없이 대금 지급 의무를 부담하겠다는 의사로 계약을 체결했음을 방증한다”고 판시했다.

하 대표 스스로 다른 계약에서는 귀책 사유 제한 문구를 넣을 줄 알았다는 사실이 이 사건에서 역으로 불리하게 작용한 것이다.

대법원은 지난 4월 30일 하 대표의 상고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했다. 상고이유가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에서 정한 법령 위반이나 중요한 법률 문제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며 관여 대법관 전원 일치 의견이었다.



[돋보기]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는 사회”…계약서 한 줄이 막는다


신한캐피탈-어반베이스 약정금 사건 판결이 스타트업 업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투자계약서에 대표이사가 ‘이해관계인’으로 서명할 경우 회사의 귀책과 무관하게 회생·파산 등 객관적 사실의 발생만으로도 개인 책임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점이 1심부터 대법원까지 일관되게 확인됐다.

법원이 결정적 근거로 삼은 것도 계약서였다. 귀책 사유 제한 문구를 다른 계약에는 넣을 줄 알았으면서 이 사건 계약에는 넣지 않았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귀책 사유 없이도 의무를 부담하겠다는 의사표시의 근거가 됐다.

연복리 조항의 위력도 재확인됐다. 5억원의 투자금은 약 7년 만에 원금의 2.5배인 12억5000만원으로 불어났다.

하진우 어반베이스 대표는 “채권이 실제로 집행된다면 채무 불이행자가 되고 정부가 운영하는 재창업 프로그램의 지원 자격조차 박탈당하게 된다”며 “현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벤처투자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의 배경이 된 계약 관행 자체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벤처캐피털 대표는 “창업자와 함께 위험을 감수하고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벤처투자의 본질에서 보면 이런 투자계약 관행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고 말했다.

과거 금융 계열 창업투자회사·캐피털사를 중심으로 퍼진 이해관계인 서명 관행은 업계에서 거의 사라졌지만 오래된 계약은 여전히 살아남아 창업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